무술년(2018) 시월 십일 영선사 합동기일추모재 봉행..양 11월 17.토.. [2018.11.15 19:26:27] 관리자


국운융창, 불법홍포, 가내평안, 자손 공직진출 기원

"() 시월 십일 영선사 합동기일추모재 봉행"

-무술년(2018) 양력 11월 17(토) 선망 조상(祖上) 위로, 추모 기도-



영선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0일(2018년은 양력 11월 17일 토) 다음과 같이
가정 내 조상 합동기일, 후손이 없거나 방치 소외, 혹은 미성년으로 생을 마감하는 등


다양한 사유로 정상적인 본인의 기일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되신


선망 조상님들을 위로하는 영선사 합동기일추모재’를 봉행합니다.
동참하실 님들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사람이 잘 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고 못 되는 것에도 필연적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지 엄연히 실존하는 법입니다.

..


우리의 삶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노력만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인 일입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 조상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합동기일추모재는 개인 중심으로 변화 된 이 시대에 기일이 정상적이지 못해
서운한 마음의 조상님이 여러분들 삶에 타격을 주시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와
매년 시월에 국가에서 열렸 제천행사(祭天行事) 가운데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부분을 가져온 것입니다.
....


올 해부터는 이 정신을 살리기 위해
직접 참가자 님들은 햅쌀 두 되(2018년 산)를 가져오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되이 기준은 지역마다 다릅니다만 근래 도량형 통일 된 신 되로는
쌀의 고봉 1되는 2KG 정도 되어서 포장된 쌀은 약3~5KG 쌀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지역의 되 기준 2 되는 3.6~4KG)
공양 원칙은 집에서 준비해서 가져 오시는 겁니다.
소포장 시장 가격은 너무 비싸 절에서 준비하는 방법이 있는데 권장사항은 아닙니다.
가격은 쌀1가마 기준 현재 20만원 이상으로 거래가로 잡히니 1만원을 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햇곡식을 바친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2018년 산 쌀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아래 되와 말 자료 참조)
..




합동기일추모재의 기도비는 아래와 같습니다.
...





순번

기도비 합계

내용

1

설판재자

15만원

기본기도비 5+ 추가헌공비 10이상

2

공양재자

10만원

기본기도비 5+ 추가공양비 5이상

3

영단위패모심

5만원 이상

기본기도비 5




(설판 공양 동참님들은 별도로 영가님 외에 생축, 가족축원이 올려집니다.)

(동참자 생축은 별도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햅쌀 2되 준비 가격은 1만원)



연락처 : 휴대폰 신청 문자 : 010-3681-1201(대성보살님)

           펙스: 063-635-2785 // 영선사 : 063-636-2195

           이메일 jakbup@hanmail.net

           홈페이지 접수 : http://www.youngsunsa.org 기도신청서

           http://www.youngsunsa.org/youngsunsa/prayer/request.html



 온라인 : 송금계좌는 우체국 400960-01-001394(예금주 : 조계종 영선사)

           (주의: 대표 계좌번호가 사찰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찰로 보내는

           모든 송금, 송금자 뒤에는 모두 '기도'라고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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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 : 승(升)이라고도 한다. 모양은 정육면체 또는 직육면체이며, 나무 또는 쇠로 만든다.

보통 되라고 하면 10홉[合]을 말하는데, 이를 큰되[大升]라 하고,

이것의 반(半) 되는 분량 또는 그의 용기를 작은되[小升]라고 한다.

1되는 약 1.8ℓ이다. 한편, 되와 ℓ의 환산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신되[新升]라 하여 1승=2ℓ 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국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단위라고 하나,

현재 도량형법(度量衡法)이 미터법으로 통일됨에 따라 이의 사용은 감소되고 있다.

말 : 척관법(尺貫法)에 의한 부피의 계량단위인 되[升]의 보조 계량단위로, 두(斗)라고도 한다.

1말은 10되에 해당하며 18ℓ(리터)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미터법이 한국에 도입되자 1되를 미터법에 의해 2ℓ로 하는 신(新)되가 출현하여

말도 신말(20ℓ)과 구(舊)말(18ℓ)로 구분되어 사용되다가,

1961년 5월 10일 계량법이 제정되어 척관법에 의한 계량기의 사용이 금지됨으로써

구말은 자취를 감추고 신말만이 남게 되었다.

따라서 계량단위로서의 말은 18ℓ로 되고,

상거래에 사용되는 계량기(計量器)로서 말은 아직까지 20ℓ로 통용됨에 따라

계량기인 말과 계량단위인 말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출처: http://miltonia.tistory.com/1896 [밀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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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厲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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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이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주던 제단.

역사적 변천

여단 제도는 1401년(태종 1) 좌찬성 권근(權近)의 주청을 받아들여

대명제례(大明祭禮)에 따라 처음으로 북교에 여단을 쌓아 여귀(厲鬼)에게 제사 지낸 데서 비롯되었다.

그 뒤 각 주현에 명하여 여단을 만들어 여제를 지내도록 하였다.

내용

단의 모양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6.3m(2장 1척), 높이는 0.75m(2척 5촌) 정도이다.

사방에 층계로 담을 쌓아 단을 보호하였다. 토담 한 변의 길이는 15m(25보) 정도이며, 남쪽으로 출입문이 있다.

단의 남쪽에는 한 변의 길이가 1.5m(5척)인 요단(燎壇)을 설치했다.

출입문은 0.6m의 너비로, 위로 열고 드나들도록 되어 있다.

여제는 3일 전에 성황당에서 발고제(發告祭)를 지낸 뒤에 본제를 지내도록 규정하였다.

여단에는 여귀의 신좌(神座)를 단의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좌우로 나열한다.



제사를 지내는 대상 가운데

칼에 맞아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불에 타서 죽은 사람, 도둑을 만나 죽은 사람,

남에게 재물 때문에 핍박을 받아 죽은 사람, 남에게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사람,

형을 받아 죽은 사람, 원통하게 죽은 사람, 천재지변으로 죽은 사람,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의 위패는 왼쪽에 세운다.



맹수에게 물려 죽은 사람,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 굶주려 죽은 사람,

전쟁하다가 죽은 사람, 위급한 일을 당해 목매어 죽은 사람,

 바위나 담에 깔려 죽은 사람, 해산하다가 죽은 사람, 벼락 맞아 죽은 사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죽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은 오른쪽에 위패를 세운다.



제사는 1년에 세 차례 지낸다.

봄에는 청명일(淸明日), 가을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

특별한 예로는 1671년(현종 12) 돌림병이 극심하자

 동교와 서교에 새로 단을 모으고 돌림병으로 죽은 역귀(疫鬼)에게 치제한 일이 있다.

지방에 특별한 괴변이 일어나거나 큰 전투가 있어

사람이 많이 죽은 곳에는 정례에 구애하지 않고

수시로 제관을 보내어 소사(小祀)로 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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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행사 (祭天行事 )

하늘을 숭배하여 제사를 지내는 일을 말한다.

하늘에 대한 숭배는 여러 지역과 문화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하늘은 그 무한한 넓이, 절대적 현재성(現在性), 불가사의한 광명(光明) 때문에

인간에게 숭고성 · 장엄성 · 신비성을 불러 일으켜서, 하늘 그 자체가 신성을 획득하기도 하고

신성(神聖)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천신은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이며 창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배자로서,

 질서의 수호자이며 동시에 풍요를 주는

전지전능한 지고신(至高神, supreme being, supreme god)으로 믿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부족들의 최고신인 바이암(Baiame)은 스스로 창조되었고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존재로서, 비를 내려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바빌로니아의 아누(Anu)는 천신이며 최고의 지배자로 왕권의 원천이었다.

그리스의 천신 제우스도 창조자이자 지배자였다.



그런데 천신은 그 지고성(至高性) 때문에 인간의 실제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사람들의 일상 종교의례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화에 의하면, 천신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난 뒤,

그 아들이나 다른 신들에게 창조를 완성케 하거나 만물의 지배를 위임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러한 은퇴한 천신의 모습이 단군신화의 환인에게도 발견된다.



또 천신은 그 보편성이 가져온 수동성 때문에 많은 대리자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천공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신격화한 태양신 · 바람신 · 구름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야훼(Yahweh)나 이슬람의 알라(Allah)와 같은 일신교의 천신은

창조자이자 인간생활의 심판자로서 활동하는 지상신(至上神)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또 유목족의 천신도 대개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상신(至上神)이었다.



시베리아를 포함하여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천신은 전지전능을 발휘하며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에 따라 많은 제천행사가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거행되었다.

또한 천신은 지상의 정치적 지배권력을 보증하는 원천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상의 지배자는 천신의 대리자로서 직접 그 혈통을 이어받았거나,

천신의 명령을 받아 그 권력을 이행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천자(天子)나 흉노의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

고조선의 단군왕검(檀君王儉), 선비와 돌궐의 가한(可汗)과 같은 군주의 호칭은

모두 그 군주권의 원천을 하늘에서 찾은 것이었다.

지상의 여인이 하늘의 빛을 받아 시조왕을 낳았다는 부여 · 고구려 · 몽골의 시조신화나,

하늘로부터 아이의 모습으로 내려와 지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신라와 가야의 시조신화

모두 고대인들이 하늘의 신성함에서 왕권의 기원을 찾았던 흔적이다.



고대 중국에서 천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최고신(最高神)이었으며,

지상의 지배자는 하늘의 명령을 받아 통치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일찍부터 중앙집권력을 기반으로 한 군주권이 발달한 중국에서

천신에 대한 제사행위는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거행되었고,

국가 제사가 정비된 이후 제천(祭天)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의무이자 특권적 행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에서의 천신 숭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명 · 청대 중국 민간 종교에서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여러 천신들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 한국에서도 천신은 지고신(至高神)이며,

풍요와 다산을 보장해 주고 정치권력의 원천이기도 한 최고신(最高神)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제천행사 또한 전 사회적 차원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단군신화에 환인과 환웅이라는 천신이 등장하며,

특히 환인의 아들 환웅은 바람과 비와 구름을 부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지고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가 환웅의 아들, 즉 천자(天子)인 단군이 고조선의 시조이자 지배자로 나와

고대 한국인들 역시 지상 권력의 원천을 하늘에서 찾았음을 알 수 있다.



환웅이 산과 나무를 통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그곳이 신성한 제장(祭場)이 되었으며

환웅이 지상의 안녕을 가져다 주었다는 이야기는,

현재 민속에서 산속의 나무를 통해 내려오는 천신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보장해 준다는 믿음과

그에 의해 거행되는 공동체 의례의 기원을 짐작케 한다.



고대 한국의 제천행사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개방적인 형태로 거행하면서

 의례의 감정을 공유하는 공공의례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삼국지』에 의하면,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이

모두 제천행사로서 연일 음주가무(飮酒歌舞) 하며 거행하는 나라 안의 큰 행사였고,

삼한에서는 이러한 제천행사를 천군(天君)이라는 종교 전문가가 주도했다고 한다.



특히 고구려의 제천행사인 동맹은 굴 속에 유폐된 시조모(始祖母) 유화를 모시고 나와

물가에서 시조 주몽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거행되는 이동형 제의였고,

또 시조를 제사하는 것이 곧 천신을 제사하는 것이기도 한 복합적인 성격의 제천행사였다.

시조 제사가 곧 제천이기도 했던 것은 신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탁발선비나 고대 일본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천신에게서 인격신적 요소가 떨어져 나간 중국과 달리,

고구려나 신라 등 주변 사회에서는 천신이 인격성을 가지고서 인간 세상에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시조신화의 내용을 통해 볼 때, 고구려의 유화와 주몽은

오곡종자를 관리하여 지상에 풍요를 보증하는 농업신적 성격을 부여받았고,

신라의 시조왕과 왕비 역시 그러한 존재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들을 제사의 대상신으로 하는 제천행사는 시조신이나 농업신의 성격도 포함한

천신의 지고전능함을 모두 끌어내어 인간 세상의 평온함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제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제천행사는 고대국가 성립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산재한

여러 집단의 일반적인 공공의례로 거행되었으며,

집권적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시조를 중심으로 한

특정 집단의 제천행사가 국가 최고의 제사로 재편성되고,

여타 집단의 제천행사는 해당 지역 집단의 공공의례로 정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백제는 일찍부터 중국의 교사제도(郊祀制度)를 들여와

남단(南壇)을 두고 천지(天地)와 오제신(五帝神)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신인 동명에 대한 제사도 거행되었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시조신을 통해 제천을 하는 전통적인 제천행사도 거행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앙집권적 국가지배 체제를 정비하면서

중국의 유교적 국가제사 체계를 받아들여 국가제사 체계를 정비하였다.

유교의 국가제사 체계에 의하면, 중국의 천자만이 제천(祭天)을 할 수 있었고,

제후는 종묘 제사와 자기 지역의 산천신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신라의 국가제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제천을 했다는 분명한 기록은 없고

시조에 대한 제사를 국가의 최고 제사로 거행했던 기록만 있다.

이 때문에 후대에 신라를 유교 예제를 잘 지켜

제천을 하지 않은 겸손한 나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라인들도 고구려인들처럼

시조를 제사하는 것을 곧 천신을 제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시조왕에 대한 제사를 제천행사의 의미로 거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도 제천행사는 가장 중요한 국가제사로 거행되었다.

고려는 유교의 국가제사 체계를 받아들였으나,

원구(圓丘)에서 호천상제(昊天上帝)에게 제사하는 천자의 제천례(祭天禮)를 시행하였다.

한 해의 풍년을 빌거나 비가 오기를 청하면서 제천을 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재앙을 물리치려는 도교식 제천을 거행하기도 했다.



또 고대 이래의 국가적 제천행사의 전통을 이은 팔관회(八關會)를 정기적으로 거행하였다.

팔관회는 불교 의례이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종교 의례가 결합되어 천신과 산천신 등 전통적 토착신과 조상신을 제사하는 복합적인 의례였고,

이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주가무를 즐기는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공공의례였다.



민간 차원의 제천행사도 계속해서 거행되었다.

황해도 구월산 지역에서는 환인과 환웅, 단군을 삼성(三聖)으로 제사 지냈다고 하고,

염주 지역에는 예전부터 제천을 하던 곳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 기록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천신 등 여러 신에게 제사를 하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고대 제천행사의 전통을 이은 공공의례들이

여러 지역공동체 단위마다 거행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이상사회를 지향하면서 국가제사 체계 또한 유교 예제에 의해 재편되었다.

초기에 잠깐 고려 이래의 전통에 따라 제천을 하기도 했으나,

곧 제후국에서 제천은 지낼 수 없는 것이라 하여 폐지되었다.

그러다 다시 국가적 제천을 거행하게 된 것은 고종 34년(1897)이 되어서였다.

조선이 청의 종속국이 아닌 독립국임을 국제사회에 선포하는 의례적 상징으로서 제천을 거행한 것이다.



지금의 서울 소공동 지역에 원구단(圓丘壇)을 쌓고

10월 12일에 고종은 친히 하늘에 제사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곧 조선왕조가 멸망하면서 국가적 제천의식은 더 거행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성립 이후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하여 국가 공식 기념일로 정하였는데,

전통시대의 국가적 제천행사를 이은 것이라 하겠다.



조선시대 유교 예제에 부합되지 않는 많은 전통적 제사들이 폐지되었으나,

민간의 종교적 열망을 모두 꺾을 수는 없는 것이어서

민간에서는 대관령 산신제 같은 무속적 지역공동체 의례가 여전히 거행되었다.

이들 의례는 지방관과 향리, 백성들이 모두 참가하는 공공의례였다.

이러한 지역공동체 의례는 현재까지 민속의 마을 제사로 이어지고 있다.



마을 제사의 대상신은 산신인 경우가 많지만,

그것의 원래 기원을 찾아가면 천신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의례의 형식이 고대의 제천 의례와 같이 개방형 · 소란형 의례라는 점에서

고대 제천 의례의 전통이 현재의 민속에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무속에서 무당이 모시는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천신이라는 점에서,

고대 이래의 천신 숭배의 전통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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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나희라(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참고문헌

  • 금장태, 「祭天儀禮의 歷史的 考察」, 『儒敎思想硏究』 4 (한국유교학회, 1992).
  • 나희라, 『신라의 국가제사』 (지식산업사, 2003).
  • 서영대, 「한국고대 신관념의 사회적 의미」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 유동식,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연세대학교출판부, 1975).
  • 최광식,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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