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의 정신 보디삿트와 2004.11.06
    지장경의 정신(1)/무비스님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상의 경지, 즉 깨달음에 이르는 궁극 목적은 같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앙의 형태는 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와 지장신앙(地藏信仰)이 보편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장보살을 통해서 삶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지장보살은 불교의 사대보살(四大菩薩)중의 한 분입니다. 여기서 지장보살의 정신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가르침 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보살들 중에서 대표격인 사대보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대보살이란 문수(文殊)보살과 보현(普賢)보살, 관음(觀音)보살과 지장보살을 말합니다. 이들 사대보살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그 원력에 의하여 각각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보현보살은 지혜의 실천을, 관음보살은 자비(慈悲)를, 지장보살은 원력(願力)을 상징합니다. 먼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상대성에 의하여 건립되고 존재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문수보살이 정신적인 면을 의미한다면 보현보살은 육체적인 면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 문수보살은 아내의 입장이라면 보현보살은 남편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문수가 왼 쪽이라면 보현은 오른 쪽, 문수가 밤이라면 보현은 낮이 됩니다. 이 모든 상대적인 관계를 현성하고 있기에 궁극에는 그것들의 조화를 목표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문수보살을 설명할 때는 집안의 일을 다스린다고 하여 가리사(家裏事)맡았다 하고, 보현보살을 표현할 때는 집밖의 일을 다스린다고 하여 도중사(途中事)를 맡았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문수보살은 체( )가 되고, 보현보살은 용(用)이 됩니다. 이처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관계는 사람, 물건, 가정, 사회 나아가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그 어떤 경우라도 모두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각각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 됩니다. 또한 한 가정으로 보면 집안에서 아내의 역할을 다하고 집밖에서 남편의 역할을 다해 조화롭고 충실한 가정이 되며 개인으로는 바람직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실천이 가장 조화롭게 된 상태를 바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곧 부처님의 삶, 진리의 삶,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관음보살은 보이는 세계와 현실적인 삶의 문제 등 현세적인 모든 문제를 담당하고, 지장보살은 보이지 않는 세계, 죽음의 문제, 저승의 문제등 내세적인 모든 문제를 담당한 것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현실의 문제들은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드리는 반면 돌아가신 분을 천도(薦度)한다든지 또는 영혼과 관련된 일들로 고통받고 있을 때는 지장기도를 드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다시 말해 관음보살은 낮의 문제를 담당하고, 지장보살은 밤의 문제를 담당하며, 곧 밝음과 어둠의 세계로 구분 지워서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낮에 해당하는 현실의 문제는 관음보살의 자비로 해결하고, 밤에 해당하는 유명(幽冥)세계의 문제는 지장보살의 큰 원력으로 해결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대보살을 다시 공간적으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시간적으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날줄과 씨줄로 얽혀서 조화를 이루어 잘 엮어질 때 이상적인 세상과 바람직한 삶이 영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장경의 정신(2) 이와 같은 사대보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지장보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장보살의 정신은 지장기도를 드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외우는 염불 즉 멸정업진언(滅定業眞言)이란 말 속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관음기도를 마친 후에는 그냥 업장을 소멸시킨다는 뜻으로 멸업장진언(滅業障眞言)이라고 하는 반면 지장기도 후에는 멸정업진언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지장보살의 위력, 다시 말해서 원력(願力)이란 참으로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멸정업(滅定業)"이란 말 그대로 이미 정해져 있는 업까지 다 소멸시킨다는 뜻입니다. 정업(定業), 즉 결정된 업이란 우리가 언젠가 받지않으면 안되는 업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정업난면(定業難免)이라 해서 한 번 결정된 업은 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정업도 소멸시키는 위신력을 가진 분이니 지장보살, 즉 그 원력이란 모든 존재의 생존의 원동력이 됨으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정신과 원력을 말 할 때 아래의 세 가지를 듭니다. 첫째,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고 난 후 깨달음을 이루겠다 [衆生度盡 方證菩提].는 원력입니다. 둘째,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 [地獄未空 誓不成佛].는 원력입니다. 셋째,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 [我不入地獄 誰入地獄]. 내가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의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원력입니다. 이 세 가지 원력에서 지장보살의 위대한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장보살의 이름 앞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란 말을 붙혀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원력이 깊고 넓으며 원력, 즉 꿈과 희망과 기대감 이야말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꽃을 가장 힘차게 피운 예라고 하겠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지장보살이 부처님도 면하지 못하는 결정된 업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원력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은 궁극적으로 강인한 원력, 하늘을 찌르는 원력의 힘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장보살은 곧 원력 그 자체입니다. 원력은 곧 생명력이며 모든 생명들의 생명의 근본입니다. 모든 생명들의 생명의 근본은 꿈과 희망이며 원력입니다. 우리가 지장보살과 같은 강한 원력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 어떤 업장(業障)도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업장보다 더욱 강력한 원력을 가진다면 업장은 쉽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인한 원력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바로 지장경의 가르침이며 지장보살의 정신입니다. 다시 말해 지장보살이 말하는 원력의 정신을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으로 삼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소한 고난과 어려움들은 곧바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인생살이가 고달프다 하더라도 지장보살이 갖고 있는 강인한 원력과 그러한 인생관을 가슴 속에 간직한다면 어려운 난관도 충분히 극복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확신을 지장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지장보살의 근본 정신은 모든 중생을 자기의 자식처럼 생각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苦)와 낙(樂)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하여 강인한 원력으로 모든 고난들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처- 범어사(http://www.beomeo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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