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초대 주지이신 ‘법련스님’께서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으셔서 창건한 사찰이지만 이곳은 법련스님이 터를 잡기 이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현재 영선사 산신각은 거대한 바위 아래 자연 동굴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동굴 말고도 작은 동굴 2개가 더 있다. 큰 동굴 바위 밑에서는 물이 나오고 양지가 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발굴 이전에는 1976년 부터 영선사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추정일 뿐 확실한 근거가 없기에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영선사의 창건은 1976년 4월 15일 법련스님에 의해 터파기가 시작되었으며 5월 낙성을 하여 사명은 ‘영선암(靈仙庵)’, 초대 주지는 ‘법련(法蓮)스님’으로 출발하였고 이후 1993년 10월 미륵불 봉안과 함께 ‘영선사(靈仙寺)’로 사명을 개칭하였다.

1996년 4월 2대 주지로‘월공(月空))스님’이 취임하였으며 혼자 지장행자로서 정진을 계속 하시던 중 1998년 8월 남원불교대학 강사로서 강좌 중 ‘계율’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시다 금산사 ‘진표율사(眞表律師)’의 행장을 보고 크게 발심하였다. 이후 대중과 함께 지장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서원을 세워 사보와 법회를 통하여 지장철야 기도를 공지하여 1998년 9월 26일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신도들과 함께 1부 법회(오후 9시~오후 10시)와 2부 철야기도(오후 10시~익일 새벽 2시), 3부 점찰법회와 예불(새벽 2시 30분~3시 30분)의 순서로 법회와 기도를 열어 신행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장기도를 시작 한 후 사세가 급격히 팽창되었으며 현재는 기도도량에 있어 필수적 요소인 신도 지원시설 연수관(건평 400평)을 현대적 시설로 완성하여 기초 작업이 완료되었고 2004년 2월 현재 65차의 지장 철야기도를 마치는 등 기도터로서의 이력을 쌓고 있다.

향후 장기적 불사 계획은 수년내에 연수관 옥상에 현재의 법당을 이사하여 ‘영산전(靈山殿)’이라는 이름을 붙여 신도의 교육과 제사등 영선사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고, 법당 자리에는 금산사의 미륵전을 본으로 7층 혹은 9층 누각 형태의 건물을 지어 200~250명의 지장행자들이 동시에 항시적으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대웅전’ 대법당을 만들 것이다. 또 법당의 옆에는 나한전을 건립하고 지장행자들이 법당에서 250미터 위에 떨어져 있는 ‘미륵선암’을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연결 계단을 만들어 운치를 더하고 필요에 따라 몇 동의 건물을 더 증축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장보살의 사상을 실천할 복지시설과 납골시설 까지 건립할 예정인 곳으로 현재는 신흥사찰로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는 곳이나 앞으로 명실상부한 ‘지장기도도량’, ‘지장기도 수사찰’로의 변모를 위해 정진중인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