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이란 본질적인 면에서는 글자 그대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염불의 역사는 부처님 당시 때 부터인걸로 보여지는데 그 이유는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 염불에 관한 부처님의 법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이후 염불은 대승불교와 중국을 거치며 다양한 수행법과 해석이 나오게 되었으며 오늘날 한국불교는 단순히 부처님을 생각하는 염불의 단계를 넘어 염불과 간경(독경), 그리고 어산(범패)을 비롯한 제반 불교의식에 쓰이는 모든 불교 음악들을 통칭하여 염불로 부르고 있다.

⑴아함에서의 염불
아함에서는 선정을 닦아 열반에 이르는 법으로서 삼념(三念)과 육념(六念), 십념(十念)의 수행을 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염불이 들어가 있다.
이 중 육념을 살펴보면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여섯 가지 불퇴법이 있다.
이것은 법을 더하고 자라게 하여 줄거나 닳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일은 부처님을 생각[念]하는 것이다.
이는 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삼은 스님네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는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다.
오는 보시(布施)를 생각하는 것이다.
육은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육념(六念)을 닦으면 법은 더하고 자라나 줄거나 닳음이 없을 것이다.”

-장아함 유행경-

이상이 육념을 설한 경전인데 육념은 육념법(六念法), 육수념(六隨念)이라고도 한다. 첫 번째는 ‘염불(念佛)’로 부처님은 여래10호를 구족하시고 대자대비의 광명을 갖추었으며 중생의 고통을 능히 구제하는 신통이 무량한 분이므로 우리도 불과 같이 되기를 염원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염법(念法)’으로 여래께서 설하신 삼장 십이부경은 큰 공덕이 있으므로 모든 중생의 대묘락이 된다. 우리가 능히 이것을 깨달아서 중생에게 배풀고자 염원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염승(念僧)’으로 승은 여래의 제자로서 무루법을 얻었고 계정혜를 구족해서 세간의 거룩한 복전이 되나니 내가 승행을 닦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네 번째는 ‘염계(念戒)’니 모든 계행은 큰 위력이 있어서 중생의 악과 불선의 법을 없애 주므로 나도 능히 그것을 호지 정진하기 위하여 염원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 째는 ‘염시(念施)’니 보시행의 대공덕이 중생의 간탐하는 중병을 능히 없애므로 나도 보시하여 중생을 섭수하고자 염원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여섯 째는 ‘염천(念天)’이니 욕계, 색계, 무색계의 하늘이 자연히 쾌락을 받는 것은 다 전생에 지계와 보시의 선근을 쌓았기 때문이니 나도 이와 같은 공덕을 갖추어 저 하늘에 나고자 염원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여기에서 불자가 앞의 삼보와 계율, 보시에 대해 염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늘을 염원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선과의 과를 존중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 육념에 잡아함 권1등에는 염휴식(念休息), 염안반(念安般), 염신비상(念身非常), 염사(念死)를 더하여 십념(十念)이라 한다고 한다. -불교학대사전(홍법원 간)-

⑵대승에서의 염불
대승에서는 삼매에 들어가서 염불하는 염불 삼매의 법을 설하여 이것에 의해서 죄를 멸하고 정(定)중에 불타를 본다고 하고 또 불국에 태어나고자 원하고 불타를 염하면 불국에 태어난다(염불왕생)고 한다. 범문의 아미타경에 있는 염불, 염법, 염승의 염불은 처음의 원어는 ‘붓다마나시까라(buddhamanasik?ra)’ 였고 뒤에는 ‘붓다누스므리티(buddhanusm?ti)’의 역어이다. 전자는 작의(作意:마음을 일으킴), 뒤의 것은 억념(憶念:마음에 떠올린다)의 의미라고 한다. -불교학대사전(홍법원 간)-

특히 아미타불(阿彌陀佛)을 관찰하는 염불삼매는 아미타불의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는 것을 뜻하므로 정토교에서 중요한 수행법으로 되어 있다. 정토교의 중요한 경전(經典)의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아미타불의 상호(相好;모습)뿐만 아니라 불국토(佛國土)의 빼어난 특징과 불국토의 주인에 대해서도 관찰하도록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관불(觀佛)할 수 없는 사람(죄악이 무거운 사람)에게 부처의 이름을 외울 것을 권유하는 칭명염불(稱名念佛)도 왕생의 한 수행법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토교에서는 염불에 관불과 칭명의 앙쪽 뜻을 부여하고 있는데, 중국 정토교의 고승 선도(善導)는 칭명염불 쪽을 중시하여 ‘칭명이야말로 범부(凡夫)가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바른 행법이다’라고 설교하였다.
한국에서 염불수행이 보편화된 것은 신라 때로서 특히 원효(元曉)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학(敎學)보다는 알기 쉬운 염불수행법을 일반 민중 사이에 전파시켰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들은 《아미타경》 《무량수경》 등의 연구를 통해 염불수행의 이론을 뒷받침하였고 아울러 염불을 권장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지눌(知訥) 이후 유행되어 나옹(懶翁)에 의해 정착되었는데, 당시 불교계에는 선(禪)과 염불을 조화시킨 염불선이 성행하였다. 이같은 전통이 조선시대 불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중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승려가 화엄(華嚴)과 염불과 선을 함께 중요시하게 되었다. 후기가 되어 이런 풍조가 더욱 성행하여 사찰에 염불당이 설치되고 염불회가 열렸는데, 대표적인 것은 건봉사(乾鳳寺)와 망월사(望月寺)의 염불회이다. -야후 지식 ‘염불’에 대한 답변-